Ⅱ 만주족의 흥기와 청조의 성립
1. 명대의 동북지방
명대의 동북지방에 대한 지배는 상황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었는데, 처음 명태조가 자신의 아들들을 번왕(藩王)으로 분봉하여 그중 3명을 요동지구를 파견하나 여러차례의 변화를 거쳐 요양(遼陽)에 요동도사(遼東都司), 대녕(大寧)에 대녕도사
송을 건국한 이는 사후에 송 태조(960-976)로 불려진 조광윤이었다. 그는 후주의 유능한 젊은 무장이었는데 959년 후주 군사력의 핵심적인 인물로서 근위군 대장에 임명됨으로서 우세한 위치를 확보하였다. 소년 황제가 갑작스럽게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960년 초에 군대는 조광윤을 황제로 추대하였으니,
들어가며...
임진왜란 이후 병자호란 이전까지 조선은 명국의 참전으로 '재조지은'이라는 명분이 형성, 전개되었고, 조명 양국은 16세기 말~17세기초의 선조, 광해군, 인조 대를 거치면서 '재조지은 체제'가 각각 형성, 변형, 복구되는 관계를 경험한다. 명의 도움을 받아 임진왜란을 극복했고, 광해군의
만주족의 흥기
1. 여진의 원류
수렵민이었던 여진족은 오랜 옛날부터 백두산과 흑룡강 사이에 생활터전을 잡고 살아왔는데, 16세기 말경부터 스스로를 만주라 호칭했던 통구스족이다. 이들은 이미 기원전 11세기부터 중원과 교역 및 조공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진족은 12세기 초에 이르러 금왕
수도를 천도하였다. 이로 인해 다시 중국의 정치 중심지는 베이징이 되었다. 명나라는 몽골을 포함한 주변 민족들의 세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아 비교적 안정적인 시기를 보냈으나, 말기에는 왜구의 창궐과 만주족의 흥기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다 결국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 의해 멸망되었다.
임진왜란
1. 발생 및 경과
16세기 후반기에 들어서는 동아시아에 있어서 적지 않은 정세의 변화가 일어났다. 대륙에 있어서는 명나라의 세력하에 분산되어 있던 만주족(여진)의 흥기의 징조가 나타났고 서세동정(西勢東漸)의 새로운 조류를 탄 포르투갈인의 동남아 진출은 동아시아의 정세에 새로
흥기하기 시작하면서 국제교역의 이익이 실로 막대해졌다. 서구의 군주들은 그들과 함께 공동으로 이익을 취하려 하여 상인들에 경계심을 갖지 않았으며, 교황청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그들과 연합하려고 하였다. 서구에서 상업은 동아의 국가권력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문화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
흥기하는 경향이 부각된다. 그런데 1870년대부터는 중국을 둘러싼 조공국들의 울타리가 일본과 서구열강의 침략이 강화되면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종래 중화제구체제 내에서 중요한 조공국에 위치하고 있던 유구, 조선, 월남등이 외부에 압박에 의해 차례로 중국의 지배권을 이탈하게 되고, 결국은 중